2019년 2월 26일 화요일

이색의 ‘관어대소부(觀魚臺小賦)’와 김종직의 ‘관어대부(觀魚臺賦)’

 
 
이색의 관어대 소부(觀魚臺小賦)’와 김종직의 관어대 부(觀魚臺賦)’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종직의 관어대 부는 목은 이색의 관어대 소부에 대한 화답으로 지어졌는데요,
 
고대 한시는 풍() () () () () (), 이렇게 육의(六義)로 분류하였습니다.
육의는 풍과 아, 송으로 구분이 되고 그 형식에 따라 흥과 부, 비로 나눕니다.
풍은 풍속을 노래한 서민의 시나 노래이고요,
아는 의식행사에 쓰이는 글,
송은 성군이나 선현을 찬양한 글인데요,
 
수사(修辭), 혹은 상징적 기교의 글이면 흥,
직설적 찬탄의 글이면 부,
비유와 은유 형식의 글이면 비가 됩니다.
 
육의 중 하나인 부()에는 고부(古賦), 배부(俳賦), 율부(律賦), 문부(文賦)가 있는데요,
한편의 부는 대체로 서()와 본문, 그리고 결어 형식을 갖춥니다.
 
김종직의 '관어대 부'는 그 중의 고부에 해당합니다. 고부는 한대의 부를 말하는데, 넌지시 나무라 에둘러 표현함으로써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풍간(諷諫)을 위주로 한 산문체 글쓰기입니다. 그리고 소부는 짧은 형식의 사언(四言) 위주 운문을 말합니다.
굴원의 이소(離騷)를 본뜬 운문체의 부,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 사언 위주 운문인 소부도 모두 고부에 속합니다.
 
 
김종직의 점필재집1권의 관어대 부편에는,
 
<병술년 7월에 이시애(李施愛)가 모반했고, 내가 절도사(節度使)의 명으로 군사를 모집하기 위하여 영해부(寧海府)에 갔는데, 군사를 모집하기 전 교수(敎授) 임유성(林惟性), 진사(進士) 박치강(朴致康)과 함께 가정(稼亭: 가정은 이색의 아버지 이곡의 호인데요, 가정의 옛집을 방문했다가 내친 김에 관어대(觀魚臺)에 올랐다. 그날따라 바람이 조용하고 물결이 잔잔한데, 고개 숙여 절벽 아래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것을 바라보며 즉석에서 목은(牧隱)의 소부(小賦)에 화답하여 두 사람에게 들려주었으니, 이와 같다.>
 
라는 서문이 있습니다. 자신이 관어대 부를 짓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시애의 난이 일어난 해는 1467, 세조 13년 5월이었는데요, 김종직은 영해부 유생들을 설득하여 정난군에 참여시키기 위해 교수 임유성과 진사 박치강을 만났던 듯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가정의 옛집에 가보았다는 것인데요, ‘가정의 옛집이란 곧 이색의 생가를 말하겠지요.
 
이색은 아버지 이곡이 원나라 벼슬을 살았기 때문에 외가인 영해부, 지금의 영덕군 괴시리에서 태어났는데요, 이색 또한 원나라에 유학하고 또 원나라 벼슬을 살았으므로 고향마을인 괴시리를 무척이나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색은 관어대를 중국에 널리 알리기 위해 관어대소부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색과 아버지 이곡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저의 역사인물을 다룬 영상 고려삼은 목은 이색편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목은집목은시고에 실린 관어대 소부의 서()에는,
 
<관어대는 영해부(寧海府)에 있는데, 동해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어 바위절벽 밑에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셀 수 있어 관어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영해부는 나의 외가가 있는 곳인데, 중원(中原)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부를 짓는다.>
 
라고 창작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丹陽東岸(단양 동쪽 언덕: 단양은 영해의 별칭)
日本西涯(일본의 서쪽 끝)
洪濤淼淼(큰 파도 끝없이 넘실거리며)
莫知其他(나머지 모든 것을 삼켜버렸네)
其動也如山之頹(산을 무너뜨릴 듯하던 물결)
其靜也如鏡之磨(그것이 잦아들면 닦아 놓은 거울 같은데)
風伯之所橐鑰(풍백이 그곳의 풀무를 잠그면)
海若之所室家(해약이 사는 곳 같다: 해약은 북해의 신)
長鯨群戱而勢搖大空(고래 떼 길게 무리지어 노니는 기세는 넓은 하늘도 흔들고)
鷙鳥孤飛而影接落霞(한 마리 고독한 맹금의 그림자 저녁놀에 닿았네)
有臺俯焉(관어대에서 구부려 굽어보면)
目中無地(땅은 보이지 않고)
上有一天(위에 하늘 하나 있으며)
下有一水(아래에 물 하나 있을 뿐)
茫茫其間(그 사이의 망망함이)
千里萬里(천리만리)
惟臺之下(오로지 관어대 밑만 생각하게 된다네)
波伏不起(파도도 엎드려 다시 일지 않으매)
俯見群魚(고개 숙여 물고기 떼 바라보니)
有同有異(같은 놈도 있고 다른 놈도 있는데)
圉圉洋洋(나른한 놈이든 양양한 놈이든)
各得其志(각자 하늘의 뜻으로 설계되었음이라)
任公之餌夸矣(임공자가 미끼를 자랑하는가!: 임공자는 물고기 잘 잡는 전설의 인물 임보.)
非吾之所敢擬(내 감히 견줄 바 아님이라.)
太公之釣直矣(강태공의 낚싯바늘은 곧게 펴졌는가!)
非吾之所敢冀(내 감히 바랄 바도 아님이라.)
嗟夫我人(, 우리네 사나이들은)
萬物之靈(만물의 영장)
忘吾形以樂其樂(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하고 즐거움을 즐기네)
樂其樂以歿吾寧(즐거움을 즐기다 죽으면 나는 편안하겠지)
物我一心(사물과 내가 한 마음이요)
古今一理(고금의 이치가 하나임에도)
孰口服之營營(복종의 말을 익혀서 이익에만 골몰하려는가)
而甘君子之所棄(군자라면 능히 단 것을 버려야 하는 것.)
慨文王之旣歿(애달프게도 주나라 문왕은 이미 죽었지만)
想於牣而難跂(상기하라, 어인(於牣: 주 문왕이 연못의 고기에 대해 읊은 시)에 숨겨진 역점을.)
使夫子而乘桴(이를테면 스승께서 떼를 타고 오시는 것 같은)
亦必有樂于此(이러한 낙이 또 다시 있을 수 있을까 싶은 그것)
惟魚躍之斷章(, ‘물고기가 뛰어 논다라는 짧은 문장은)
迺中庸之大旨(바로 중용의 큰 뜻을 담았음이라)
庶沈潛以終身(바라건대 성정(性情)의 침잠을 죽을 때까지 정진하라)
幸摳衣於子思子(그러면 행복하게도 자사자에게 하듯 경의를 표하지 않으랴!)
 
 
이상이 관어대 소부전문인데요,
여기서 물고기가 뛰어논다’, 즉 어약(魚躍)은 물고기가 스스로 터득하는 이치를 일컫는 말로,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군자를 뜻합니다. “중용에서의 중()은 미발, 즉 아직 감정이 발현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데요, 쉽게 말하자면 태어날 때 품부 받은 본연의 성(), 다시 말해 가장 순수한 마음상태를 뜻합니다. 갓난아이의 순수한 그 마음 말입니다. 그 순수한 마음상태를 중()이라 하고, 그 중에 이르는 길을 경()이라 하는데요,
천리, 즉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여 내 마음을 순수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경신(敬身)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일심(一心)의 지표로 일신(一身)의 대응을 다스리라는 것인데요,
내 몸이 하려는 행동을 흐트러짐 없는 마음, 즉 일심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의 혼란, 즉 흙탕물이 가라앉고 맑고 순수한 마음상태를 유지해서 악행을 하지 않게 되며, 나아가 중()에 이르러 사사로운 욕심에 현혹되지 않는 가장 완전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색은 위의 관어대 소부에서 주 문왕의 시 어인에 숨겨진 중용의 큰 뜻을 말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자신이 관어대에서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인을 상기했고, 빠른 물고기든 느린 물고기든 다 하늘의 이치에 따라 나름의 세상살이를 하고 있음을 보았다는 얘기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지극한 지식에 이른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에 모든 답이 들어 있다는 말이겠죠.
 
 
이색은 관어대 소부에 다음과 같이 결어를 덧붙였습니다.
 
<내가 17세 때 동당시(東堂試: 과거 본시험)에 응하여 화씨벽(和氏璧)’을 지었고, 21세에는 연나라 수도의 국학(國學)에 들어가서 매월 보는 시험을 쳤는데, 오백상(吳伯尙) 선생이 나의 부()를 칭찬하여 매일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고 하였다. 그 후 본국에 돌아와서는 계사년의 과거에 응하여 황하부(黃河)’를 짓고, 향시에서는 완규(琬圭)’를 지었으며, 회시(會試)에서는 구장(九章)’을 지었는데, 지금 모두 기록하지 않겠다. 이는 고문(古文)도 아니요 나의 뜻도 아닌데, 나의 뜻이 아니면서도 이것으로 벼슬길에 나아간 것은, 바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모를 영화롭게 봉양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음이라. , 슬픈 일이로고!>
 
 
고려 말 대신이자 절의의 충신인 이색의 관어대 소부를 조선의 학자이고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이 읽고 기억하였다가 영해에 갈 일이 있었을 때 떠올리고 관어대에 올라서 부로 화답했는데요.
당시는 조선 초기 세조 시대로, 고려의 충신인 이색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회분위기였습니다. 그럼에도 관인 신분인 김종직이 굳이 이색의 생가를 찾은 것이나, 이색의 관어대 소부에 굳이 화답의 부를 지었다는 것은 이색이 자신의 스승의 스승의 스승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고려삼은의 한 사람인 길재는 정몽주에게서 수학하고 다시 권근에게서도 수학했는데, 성균관에 들어갔을 땐 성균관 대사성이던 이색에게서도 성리학을 익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색의 제자이기도 했던 겁니다.
 
 
그런데 은둔하던 길재가 은둔을 끝내고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했을 때 김종직의 아버지인 김숙자가 그 문하에 들어가서 수학했습니다. 김숙자의 학문은 아들 김종직이 이어받았는데요, 그렇기에 김종직은 이색의 학통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종직이 영해부 이색의 생가를 찾아간 것은 1467(세조 13)이었습니다.
김종직이 영남병마평사에 임명된 것은 1465년이었는데요, 김종직은 평사로 봉직하면서 경상도지도지(慶尙道地圖誌)”를 편찬하고, 또 경상도좌상 원수부의 '제명기'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평사로 재임 중일 때 이시애의 난이 일어난 것이죠.
 
 
1466(세조 12) 임금은 호패법을 더욱 강화해 지방민의 이주를 금했습니다. 당시의 함길도(지금의 함경도)는 북방 이민족과 접해 있다는 특수성 때문에 그 지방 호족 중에서 지방관을 임명해 오던 관행이 있었는데요, 임금은 그 관행도 없애고 조정에서 직접 지방관을 임명해 보냈습니다. 그러자 함길도 호족들이 크게 반발했습니다.
당시 회령부사로 있다가 어머니 상을 당해 고향 길주에 가 있던 이시애는 불만 많은 호족들을 규합했고, ‘함길도절도사 강효문 등이 반역을 모의하고 있다라는 거짓소문을 퍼트리고, 조정에서 군사를 보내 함길도 백성을 다 죽이려 한다라는 거짓말로 반란을 선동했습니다.
 
 
함길도에서 반란이 일어날 조짐이 있자 조정에서는 이에 대비해 각 지방에 정난군(靖難軍) 모집을 명했는데, 김종직에게는 영해부에서 군사를 모집하라는 명이 내려졌던 겁니다.
영해부로 달려간 김종직은 그곳이 이색의 고향임을 상기했고, 짬이 나자 임유성과 박치강의 안내를 받아 괴시리(호지마을)의 이색 생가를 찾았고, 관어대에도 올랐던 것입니다.
그럼 김종직의 관어대부를 보겠습니다.
 
 
肅承符于玉帳兮(두렵게도 원수부의 부절(신표)을 받고 옥장에 들었어라)
東將窮乎海涯(동쪽 바닷가에 이르렀나니)
紛羽檄之交午兮(격문을 들고 이리저리 분주한데)
余安能以恤他(내 어찌 다른 일을 돌아볼 겨를이 있었을까)
懼壯事與老謀兮(염려스럽구나, 난에 대비해 굳세고도 빈틈없는 계책을 세우는 일이)
洎日月以消磨(소득 없이 물 붓듯 세월을 허비하다가)
呬禮州之闉闍兮(예주(영덕의 옛 지명)의 성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聊延佇於前修之故家(장수의 지휘석에 기대어 고개를 길게 뻗으니 얼핏 군자의 옛 집이 보이도다)-여기서 말하는 군자는 이색이겠지요.
有臺巙㞾于厥傍兮(관어대는 그 산 근처 어디겠구나.)
襯赤城之晨霞(적성의 새벽노을 가까운데)
從二客以指點兮(따라온 두 손님에게 그 지점을 가리키니)
恍不知身之憑灝氣而躡玆地也(나도 모르는 새 황홀한 자연의 기운을 받은 몸이 어둠을 밟고 그곳에 가 있음이라)
 
 
蒙莊奚詫於知魚(어찌 몽장은 물고기의 마음을 안다고 하였는가!: ‘몽장지어는 장자와 혜자가 물고기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 장자가, “물고기가 참 즐겁게 노네라고 말했는데, 혜자는 그대는 물고기도 아니면서 물고기가 즐거운지 어찌 아오?”라고 물었고, 장자는 그대는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찌 아오?”라고 되물었다는 얘기에서 유래된 사자성어입니다. 참고: https://yetgle.net/2656)
鄒孟敢稱於觀水(추맹은 맹자를 말함인데요, 맹자 감히 물을 잘 살피라 말하였던가)
倚危磴而遐矚兮(기암절벽 위에 위태롭게 기대어 멀리 바라보노니)
渺雲濤其幾里(아득한 구름물결 그 몇 리련가)
少焉颶母不翔(이윽고 거센 바람 잦아들고)
鹽煙遙起(소금 굽는 연기 멀리 일어나: 옛날 우리 조상들은 천일염이 아니라 가마에 구워서, 즉 전오제염법(煎熬製鹽法)으로 생산한 소금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까지 울진과 영해, 강릉 등지의 해안에 소금가마가 많았다는데요, 동해안은 갯벌이 없으므로 황토와 모래를 이용해 염도를 높인 후에 끓였으므로 토염, 혹은 자염이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울진에서는 토염을 생산하는 조합이 있고,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海市如掃(해시여소: 신기루처럼 쓸려 사라지니)
光景欻異(문득 새운 광경이 펼쳐지도다)
劃長嘯以俯窺兮(각설하고, 긴 휘파람 소리 내며 내려다보니)
群魚撥剌以悅志(물고기 떼 소리 내며 날아올라 기쁨을 표하거나)
蹇族戲而隊游兮(저희끼리 무리로 줄지어 느리게 헤엄치네)
匪膚寸瀺灂之可擬(비늘의 아름다운 광채와 찰랑 철썩 소리가 가히 장관이로다)
凌通派以喁噞兮(파도를 뛰어넘어 입을 벌름벌름하는데)
縱網擉兮奚冀(어찌 그물 작살로 잡기를 기대하리)
或掉鬐而奮鱗兮(꼬리와 지느러미를 흔들거나 혹은 비늘을 날리는데)
吾恐風雷變化以通靈(내게는 무서운 바람과 벼락을 변화시킨 신통력 같았다네)
攀虯枝而太息兮(꼬불꼬불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크게 숨 몰아쉬니)
感物類之咸寧(만물에 감응하여 소금기마저 편안하네)
竝鳶飛以取譬兮(나란히 나는 솔개에서 깨우침을 얻나니)
孰聽瑩於至理(누가 그 지극한 이치에 귀 기울이지 않으리)
斯太極之參于前兮(모두 태극의 주재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矢佩服而勿棄(마음에 똑바로 새겨서 잊지 말아야 하리.)
眷二客之脩騫兮(두 손님의 안내 덕분에)
忽有得於瞻跂(생각지도 않게 관찰력을 얻었으니)
崇羽觴以相屬兮(존경의 술잔을 서로 권하네)
悟一本之在此(태극의 이치가 여기 있음을 깨닫게 해준)
酹牧翁而詠姱辭兮(목은 어르신께도 술잔을 올리고 아름다운 글로 작별하니)
若飽飫於珍旨(진귀한 음식으로 배를 불린 듯하고)
肝膽非楚越之遙兮(‘간담초월은 고대 중국의 초나라와 월나라 사이처럼 가까이 있어도 관계가 소원한 것, 다시 말해 가까이 두고도 모르는 것을 말하는데요, ‘간담비초월지요혜는 간담은 초월처럼 멀지 않구나, 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색의 학통이 자신에게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願同歸於明誠之君子(원동귀어명성지군자: 명성이란, 명선(明善)과 성신(誠身)을 뜻하는 말인데요, 명선은 선을 밝히는 지()이고, 성신은 몸을 성실히 하는 행()입니다. 그러므로 원동귀어명성지군자는 원하옵건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함께 밝혀서 명성 소속의 군자에 이르게 하소서, 라는 뜻이겠지요.)
 
 
이상이 김종직의 '관어대 부'인데요, 김종직은 위의 글 관어대 부에서 어조사 ()’를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습니다. 굴원의 부에도 혜 자()가 많이 사용됐는데요, 김종직의 관어대 부가 굴원의 이소를 본뜬 고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종직이 이색의 소부에 대한 화답의 부를 지었다는 것은, 그 학통을 계승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존숭의 마음을 전한 것입니다.
김종직은 후에 무오사화때 그가 지은 조의제문이 문제가 되어 부관참시 되었지만 제자들에게 고려를 복원하라는 유명을 남겼다는 누명도 부관참시의 또 다른 이유였습니다. 그런 누명이 통했던 것은 그가 고려삼은의 학통을 계승했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