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4일 일요일

나옹화상의 삼구(三句)와 삼관(三關)

나옹화상의 삼구(三句)와 삼관(三關)
 
 

불교에서 간화선(看話禪)은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법인데요, 화두공부는 진리로 향하기 위한 궁구의 출발점으로, 모든 인지수단을 무용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言語)’을 궁구하여 사유방식과 분별이 통하지 않는 곳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마음이 곧 부처라는 믿음에서 시작하여 말이 만들어내는 의도와 의미를 차례차례 없애서 결국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마음만 남게 하는 수양법입니다.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이 있는데요, 임제종(臨濟宗)의 개조(開祖)인 임제(臨濟) 의현(義玄)의 법어(法語)입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뜻인데요, 그러므로 잡념을 만나면 잡념을 죽여야 하겠지요. 바로 이 잡념을 죽이는 방법이 화두공부입니다.
 
화두는 말을 생각으로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데요, 깊은 생각은 잡념을 없애며, 순수한 생각은 무상무념으로 이어집니다. 번뇌와 망상이 사라지고 말 그 자체만 남으면 생각이 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그래서 모든 말은 그 의도와 의미를 상실해버리는 것이죠. 그 경지에 이르면 말은 의사전달수단이라는 순수한 목적만 남게 되므로 말 속에 의도와 의미를 숨길 수 없게 됩니다. 말이 청정해지면 무념무상 상태가 되므로 정신이 청정해지고, 그러면 마음이 곧 부처가 되는 거겠죠.
 
화두에는 법신변사(法身邊事) 화두가 있고, 여래선(如來禪) 화두가 있으며, 향상구(向上句), 향하구, 최초구(最初句), 말후구(末後句), 일구(一句), 이구, 삼구 등의 화두가 있습니다.
 
고려 말에는 간화선이 유행했는데요, 이 시기의 불교는 원나라 불교의 영향으로 왕실 중심의 귀족불교였습니다. 그래서 절은 왕실이 내린 토지와 귀족들이 시주한 토지, 그리고 노비를 많이 소유하게 됐고, 세금을 면제받으면서 사원경제가 확대됐습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 불교가 자정능력을 상실하면서 사찰과 승려의 세속이 이루어지고 승려들이 백성을 상대로 고리대금업과 양조업을 하는 등 여러 폐단이 발생했는데요, 이러한 때에 신흥학문인 성리학이 일어나면서 불교는 유학자들의 집중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에 불교의 위기를 느낀 나옹과 태고(조계종 종조 보우普愚) 등은 일반 백성에게도 불법을 전파하여 그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위기를 탈출하려는 불법보편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또 국내외의 선사상을 두루 계승하여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법으로 교계를 정화하려는 자정운동을 펼치며 선풍을 이끌었는데요, 간화선 참선법이 일반 백성에게 불법을 전파하기에 적합했던 것 같습니다.
 
간화선에서는 관문(關門), 즉 주어진 화두에 참구하는 것을 진리를 향해 가는 구도의 길로 봅니다. 화두는 견고하게 잠긴 문이고, 이 화두의 빗장을 푸는 승려만이 진리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건데요, 그래서 간화선사들은 제자를 받을 때 삼구(三句)와 삼관(三關)을 차례로 물어 화두를 참구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 청룡사지가 있는데요, 그곳의 충주청룡사보각국사환암정혜원융탑비(忠州靑龍寺普覺國師幻庵定慧圓融塔碑)에는 환암 혼수스님이 스승인 나옹화상의 삼관에 답한 내용이 나옵니다.
 
나옹화상(懶翁和尙), 즉 혜근(惠勤)스님은 고려 말에 활동한 명승인데요, 공민왕에 의해 왕사에 책봉되기도 해서, 지공화상, 무학화상과 함께 삼대화상으로 존숭되고 있습니다. 그 나옹화상의 삼구와 삼관(三觀)에 대해 살펴볼 텐데요, 삼구는 생각이 없는 무억(無憶), 감정이 없는 무념(無念), 망령됨이 없는 막망(莫忘)의 세 가지 선에 관한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것이고, 삼관은 선지식(善知識)의 세 가지 질문을 말합니다.
 
 
보각국사 환암은 나옹화상의 제자인데요,
환암은 오대산 신성암에 머물다가 고운암에 머물던 나옹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때 나옹은 환암에게 삼구와 삼관을 차례로 물어 화두를 참구하는 절차를 밟았겠지요.
 
 
나옹의 삼구로는 입문삼구(入門三句)’가 있습니다,
 
入門句分明道(문에 들어가는 글자를 분명히 말하라)
當門句作麽生(문에 도달한 글자는 어떠한가?)
門裏句作麽生(문 안의 글자는 무엇인가?)
 
이것이 나옹의 입문삼구인데요,
 
나옹이,
 
問入門句(“들어오는 문의 입구에 있던 글자는 무엇인가.”)
 
라고 묻자 환암은,
 
入已還同未入時(“들어와서 멈추니 들어오지 않았을 때와 같습니다.”)
 
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들어올 때 보지 못한 글자를 보기 위해 돌아나가는 것은 들어오지 않은 것과 같다는 말로, 이미 법문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속세에 남긴 미련을 돌아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뜻이겠지요.
 
 
다음은 나옹이 환암에게 물은 삼관을 보겠습니다.
 
삼관은 삼관어(三關語)라고도 합니다. 대표적 삼관으로는 능엄경의 중국 항주 천축사 자운스님의 능엄삼관이 있습니다. 능엄삼관은 진(), 정묘원(精妙元), 성정명심(性淨明心)을 해석하는 방법을 묻고, 또 시공간을 뜻하는 숫자인 34, 43을 곱하면 12이고 세 번을 반복하면 일십백천이라 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지 물으며, 육근(六根: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 육진(六塵: , , , , , ) 육식(六識: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7(七大: , , , , , , )의 이십오성(二十五聖)에 대해 문수보살 혼자서 관음을 얻었다고 한 이유를 묻습니다.
 
임제(臨濟) 의현(義玄)이 개조한 임제종에서는 황룡파 시조 황룡스님의 황룡삼관이 있습니다. 상좌(上座), 즉 선사 원로들의 생연처(生緣處: 태어난 인연이 끊어진 곳)는 어떤 곳인지 묻고, 나의 손은 붓다의 손과 같은지를 물으며, 내 다리와 나귀다리가 같은지를 묻습니다. 깨달음의 본질은 무엇이고, 만물이 같다면 무엇이 같은지를 묻는 말입니다. 그 외에 몽산스님이 고안한 몽산삼관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옹의 삼관은 어땠을까요?
 
, 又以三關問曰 山何嶽邊止(나옹이 또 삼관으로 물었다. “산은 어찌하여 큰 산의 주변부에 그쳤는가?”)
 
. 逢高卽下遇下卽止(답하였다. “높은 것을 만나 낮아지고, 낮아진 것에서 그치었습니다.”
 
. 水何到成渠(물었다. “물은 어찌하여 개천을 이루었는가?”)
 
. 大海潜流處成渠(답하였다. “대해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감정이 그곳에 닿아 개천을 이루었습니다.”)
 
 
. 飯何白米做()(물었다. “밥은 어째서 백미로 짓는가?”)
 
. 如蒸沙石豈成嘉(답하였다. “찌는 것이 같다고 어찌 모래와 돌로 이루겠습니까.”)
 
 
나옹이 삼관으로 묻고 환암 혼수스님이 답한 내용인데요, 산을 작은 사람에 비유하여 작은 사람은 왜 작은가를 묻고, 큰 사람 옆에 있어 작아 보이고 작은 것에서 그쳤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노력하지 않아서 작은 인물에 그쳤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지요.
 
또 물이 개천을 이룬 것을 묻는데, 혜안을 지녔는지 알아보려는 질문입니다. 거기에 대해 환암은, ‘바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감정이 개천이라고 대답합니다. 개천은 바다의 깊은 속마음을 알고 있다는 말로, 비록 작은 물줄기라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 숨어 있는 말이겠지요.
 
찌는 것이 같다고 어찌 모래와 돌로 이루겠습니까.” 라는 환암의 대답은, 같은 방법이라도 재료가 다르면 다른 것이 만들어진다는 말로, 같은 참선법이라도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에 따라 그 깨달음이 다르다는 뜻일 겁니다.
 
 
위에서 보았듯, 나옹의 삼구는 사물을 보는 같으면서 다른 눈을 요구하고 있고, 삼관은 자연 속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눈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제자의 답변에 깨달음이 있는가를 보는 것으로, 인간의 심신이 사물에 어떻게 녹아들었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옹화상의 삼구 삼관은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는 인간, 즉 만물일체사상에 기초한 선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동문선󰡕(서거정 등 저, 양대연 역, 한국고전번역원) 나옹 근혜의 법맥(이철헌,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과정수료), 나옹삼관의 선사상 고찰(염중섭, 동국대학교 강사), 나옹화상의 선사상(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조교수), 󰡔고려말 나왕의 선사상연구󰡕(김효탄 저, 민족사. 1999,09,20), 󰡔고려사󰡕(경인문화사), 나옹화상의 생애와 계승자(허흥식,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한국 간화선의 개화-태고와 나옹을 중심으로(김영욱,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불우헌집󰡕(정극인 저, 김홍영 역, 한국고전번역원), 나옹작 서왕가일고(이병철, 신라대학교 교양과정학부 교수), 나옹선사와 목은 이색의 사상적 만남(고혜령,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