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8일 목요일

[전은강, 詩를 말하다]-철학과 詩, 김춘수(金春洙)의 「꽃」


  
꽃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춘수는 19221125, 경상남도 통영읍 서정(지금의 통영시 동호동)에서 태어나 20041129일 작고하셨습니다. 바다와 섬을 접하며 유년기를 보냈고,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유학을 가서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 지금의 경기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졸업은 하지 못하고 자퇴했으며, 1940년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에 입학했으나 역시 졸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해방 후, 충무에서 유치환, 전혁림, 윤이상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고 문학과 미술, 연극 등의 다양한 예술활동을 펼쳤으며, 1946년 김수돈과 조향 등과 함께 낭만파라는 시동인지를 펴내고 조선문학가협회 경남본부에서 발행한 해방 1주년 기념사화집에 시 애가를 발표했으며, 1947, 김춘수는 첫시집 󰡔구름과 장미󰡕를 자비로 펴내고 본격 시작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마산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됐고, 1949년엔 백민’, ‘문예등의 문예지에 시 산악()’ 등을 발표하고 두 번째 시집 󰡔󰡕을 펴냈으며,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엔 진주에서 구상, 설창수, 김윤성, 이정호 등과 함께 시와 시론이라는 동인을 만들고 동명의 동인지에 시 을 발표했는데요,
 
김춘수가 꽃의 시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 즈음에 시리즈로 쓴 , 그리고 꽃의 소묘(素描), 꽃을 위한 서시(序詩)등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그 중 <이라는 시에 나타난 철학적 의미>를 한 번 분석해볼까 합니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로 시를 게재하지는 않겠습니다.
 

고려삼은의 한 사람으로서 동방성리학을 개척한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은 <‘는 내 마음 밖으로 나갈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내 마음이 내 육체의 주재자이기 때문에 내 마음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내가 아니라는 얘기겠지요?

자기 마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있다면 나가보시든가요.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을 하면서 늘 보던 그것이면서도 거기에 그것이 있는 줄을 모르고 지나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이 눈에 띄어 <, 저게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라고 깜짝 놀라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늘 거기 있었음에도 우리는 왜 그것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요?

눈이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내 마음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물에 내 마음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물은 내 마음이 닿아야 비로소 존재를 하게 된다는 얘기지요.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은 {대학}에 나오는 말인데요,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지극한 지식에 이른다는 뜻이지요. 격물치지에서 <>을 주희(朱熹), 중국의 성리학을 확립시킨 학자죠, 리학(理學) 계열의 주희는 <이른다, 다다른다는 뜻>이라고 했는데요, 그렇다면 격물이라고 하면 <내 마음이 사물에 닿다>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심학(心學) 계열 성리학자 왕수인(王守仁)<마음 밖에는 리()가 없고 마음 밖에는 사물이 없다>라고 했는데요, 마음 밖에 사물이 없으므로 마음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 육체의 눈으로 그 어떤 것을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뜻이겠죠?

왕수인은 그러면서 <몸의 주재자는 마음이고, 마음이 발현한 것이 뜻이며, 뜻의 본체는 지(), 즉 아는 것이고, 뜻이 있는 곳이 바로 사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물이 우리 눈에 띄지 않았다면, 그것은 뜻이 거기에 미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 이제 김춘수의 시 을 읽어볼까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무슨 뜻일까요?
'내 마음이 그에게 닿기 전에는'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라는 구절은 '그 사물은 비록/ 존재했더라도 내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물이다'
라는 뜻이겠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 마음의 눈이 그를 보았을 때서야/ 비로소 그 사물은 내 마음에 들어와 뜻이 되었다'
라는 뜻으로 해석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김춘수의 시 은 격물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리학의 개척자 정이(程頤)<하나의 사물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으니 반드시 그 이치를 궁구하여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꽃이 내 마음에 들어왔으니 이제 그 이치를 궁구해볼까요?
 

성리학자 사량좌(謝良佐)<마음이란 무엇인가? ()일 따름이다>라고 말했고, 공자는 <인이란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꽃은 내게 들어와서 꽃, <()의 향기>, 다시 말해 향기로운 사랑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이 말은, '내 마음이 <꽃의 향기>, 즉 사랑을 품었으니 이제 누가 나의 마음을 헤아려 내 마음에 있는 사랑을 가져가다오'라는 뜻 아닐까요?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불러준다면 내 마음이 품은 <인(仁)의 향기>를 나누어주겠다, 그래서 내 마음과 그의 마음이 같은 향기로 아름다워지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뜻이겠지요.
이 부분은 비로소 꽃이라는 사물에 대한 이치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사랑은 베풀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덕()이 쌓인다, 즉 사랑이 더해지죠? 사람들은 흔히 덕을 쌓으라고 말하는데요, 그 말은 사랑을 베풀어라, 라는 뜻과 같습니다. 덕을 쌓으면 복을 받는다고 하죠. 그 말은 덕을 쌓으면 신이 복을 내려줄 것이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덕을 쌓으라는 말은 신에게 쌓으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쌓으라는 뜻입니다. 덕을 쌓으면 저절로 복을 받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뜻이지요. 다시 말해, 물질적 사랑이 아닌 마음의 사랑을 베풀어서 내 주변에 적을 없애라, 라는 말과 같습니다.

적이 많으면 어떻게 되는가요? 맞아죽습니다.

내가 남에게 못된 말, 상처가 될 말을 많이 하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것이고, 나는 미움 받을 것이며, 외톨이가 되겠지요? 이를테면, 내가 개를 미워하여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툭하면 쥐어박는다면, 개는 틀림없이 나를 물게 될 것이고, 나보다 더 좋은 주인이 있으면 나에게서 도망쳐 그에게로 가려 할 겁니다.

반대로 사랑을 베풀어서 모두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하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면, 내가 어려울 때 모두가 도와주려고 할 것입니다. ? 내가 어려움에서 벗어나야 자기들이 나로부터 계속 사랑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사랑은 행복 그 자체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시 [꽃]은 이렇게 이어지는데요,

무엇이 되고 싶을까요? 미움? 증오? 악마
그게 아니라 꽃의 향기가 되고 싶은 거겠죠.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는 것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싶다는 뜻인데요,
 
이색은 <미미한 성정(性情)이라도 그 안에 마음이 존재하고 우주를 포괄하며 사물에 응대한다>라고 했습니다. 한갓 미물일지라도 마음이 존재하고 그 마음은 우주를 포괄하며 사물에 응대하므로 세상의 모든 마음은 인()이라는 뜻입니다. 모두가 인()의 마음으로 살면서 우리는 왜 그 마음에 꽃의 향기를 품지 못하는 것일까요?

마음은 형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마음이 하나로 뭉칠 수도, 또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김춘수는 시 에서, 마음에 꽃을 피우고 그 향기를 서로 나누어준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향기를 가진 하나의 마음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김춘수의 시 은 만물일체사상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상 소설가 전은강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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