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9일 일요일

남사고, 격암유록-갑을가, 그리고 아리랑

남사고와 아리랑.
 
 
 
민요는 민중이 부르느냐, 전문소리꾼이 부르느냐에 따라 토속민요와 통속민요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토속성과 통속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리랑의 시원은 정선아라리로 간주하는데요,
정선아라리는 단조롭고 소박한 것이 특징입니다.
 
고려가 망한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로 오지 중의 오지인 강원도 정선 땅으로 숨어든 고려의 신하 정선칠현(旌善七賢)이 있습니다.
전오륜(全五倫), 김충한(金沖漢), 신안(申晏), 이수생(李遂生), 변귀수(邊貴壽), 김위(金瑋), 고천우(高天祐)
이 일곱 명의 칠현은 정선 땅 중에서도 서운산 거칠현동(居七賢洞), 일곱 명의 현인이 살던 동네라는 뜻이죠? 그 거칠현동으로 가서 은둔하며 옛 고려를 그리워하며 한시를 지어 불렀는데요, 그때 그들이 지어서 읊은 한시가 정선아라리의 시원이라고 합니다.
 
그 중 채미헌(採薇軒) 전오륜의 시를 한 번 볼까요?
 
東來朝服在臣身
(동래조복재신신)
동쪽으로 가져온 관복을 입고
 
遙望松京哭滿巾
(요망송경곡만건)
멀리 송경 쪽을 바라보니 슬픔만 가득하네
 
唐虞世遠吾安適
(당우세원오안적)
요순 태평성대는 가고 마음 쉴 곳 없나니
 
矯首西山繼絶塵
(교수서산계절진)
고개는 서산을 향하지만 나 세상을 등지네
 
 
채미헌은 전오륜의 호고, <송경>은 고려 도읍 송도(松都), 지금의 개성을 뜻하죠?
요순(堯舜)은 중국 고대 요임금과 순임금을 말하는데요,
요임금은 도당씨(陶唐氏)의 부족장으로써 염황(炎皇)부족연맹의 임금이 되어 70년 동안 재위하면서 나라를 잘 다스리고 순임금에게 위를 선양했으며,
순임금은 우씨(虞氏)의 부족장으로써 요임금의 뒤를 이어 염황부족연맹 임금이 되었습니다.
 
두 임금은 경천순천(敬天順天), 즉 하늘의 뜻을 공경하고 하늘의 뜻에 순응한다는 사상으로 나라를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루었다고 하는데요,
임금의 자리를 탐하지 않고 어진 이에게 양위함으로써 부족연맹의 완전한 화합을 도모했으므로 성리학에서는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당우는 요임금의 도당씨(陶唐氏)와 순임금의 유우씨有虞氏)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고요.
 
위의 채미헌 시는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요,
그 외에도 정선아라리의 시원이 된 정선칠현의 시가 여러 편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6612일 별세한 아리랑 박사 박민일 교수(강원대)는 아리랑에 관한 최고의 문헌이 남사고(南師古)가 제술한 격암유고(格菴遺錄󰡕 「갑을가(甲乙歌)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격암유록󰡕 「갑을가를 살펴보았는데요, 이런 내용이 보이더군요.
 
庚子閣蔽甲乙立(경자각폐갑을립)
亞裡嶺有停車場(아리령유정거장)
苦待苦待多情任(고대고대다정임)
亞亞裡嶺何何嶺(아아리령하하령)
極難極難去難嶺(극난극난거난령)
亞裡亞裡亞裡嶺(아리아리아리령)
亞裡嶺閣停車場(아리령각정거장)
 
어때요, 우리가 아는 아리랑과 비슷하지 않나요?
 
해석을 하면
 
경자년 궁전을 폐하고 갑을을 세우리
아리령에 정거장이 있네
몹시 고대하던 다정한 님
아아리령은 무슨 고개인가
고되고 고된, 넘기 어려운 고개일세
아리아리 아리고개
아리령누각이 정거장이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 아리랑 후렴이고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이것은 정선아라리 후렴입니다.
그런데 위의 갑을가도 고단하고 또 고단한 아리령을 넘죠?
 
 
 
󰡔격암유록󰡕을 지은 남사고는 (당시의) 강원도 울진현, 지금의 경북 울진군 수곡리 누금마을에서 태어났는데요, 본관은 영양이며, 자는 경원(景元)과 복초(復初), 호는 격암(格庵)입니다. 아버지는 이조좌랑 남희백(南希伯)인데요, 강릉최씨 최침의 딸과 혼인해서 아들 남응진과 딸 하나를 두었지만 아들은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남사고는 양반 출신으로 성리학을 익힌 학자로 사직서참봉을 지냈으며, 역리(易理)와 천문(상위), 지리(감여), 점술에도 뛰어나 관상감 천문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는데요,
당대의 이이와 허균 등의 명사들이 모두 인정한 뛰어난 예언가였고, 수많은 설화도 남겼습니다.
 
 
 
 
남사고는 젊은 시절 불영사에서 신인(神人), 혹은 도인(道人)에게서 비기(祕記)를 받고 우주의 오묘한 이치를 꿰뚫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조선시대 유불선을 절충한 토속민간신앙에 도술을 부리는 도인이 있었죠?
 
󰡔격암유록󰡕에도 도()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궁을(弓乙)’에서 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궁을은 동학가요에도 자주 나오는 말로, 민족 구원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을 등을 맞대고 돌려놓으면 버금 아() 모양이 되고, ()을 합쳐놓으면 밭 전()이 되는데요, 그것을 양궁(弓弓)과 쌍을(乙乙)이라고 합니다.
 
 
버금 는 구원의 세계인 궁을촌(弓乙村)을 뜻하고,
은 성인(聖人)을 뜻하는데요,
성인의 세상이 아(), 즉 궁을(弓乙)인 것이죠. 이상향의 세계, 천당 같은 곳 말입니다. 그래서 󰡔격암유록󰡕 「남사고비결편에서는 양궁(궁궁)과 쌍을(을을)이 무극과 태극, 하늘과 땅, 아버지와 어머니, 양과 음, 천신과 지신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습니다.
앞서 제가 동학가요에도 궁을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고 말했죠?
그것은 우리 민족의 토속 민간신앙이 이 궁을사상에 있었기 때문인데요,
 
 
 
궁을사상에서 는 궁을촌, 즉 천당 같은 곳을 뜻한다고 했는데요,
그렇다면
亞裡亞裡亞裡嶺(아리아리아리령)
할 때의 아리(亞裡)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亞裡에서의 는 속, 내부, 가운데, 사물의 안쪽 등의 뜻으로 풀이되는데요,
다스림을 받다, 라는 뜻으로도 풀이되는군요.
아는 이상향의 세계인 궁을촌을 뜻한다고 말씀드렸죠. 그렇다면 亞裡는 궁을촌의 안쪽, 천당 안, 그리고 성인들만 모여 사는 구원의 세계 등으로 해석해볼 수 있겠군요.
 
苦待苦待多情任(고대고대다정임),
<고대하고 고대하는 다정한 님>은 궁을촌을 다스리는 바로 그분이겠군요.
 
그렇다면 아리령(亞裡嶺)은 아리로 가는 고개가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구원의 세계 궁을촌으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가 있습니다. 바로 아리령입니다.
그러나 그 고개는 아무나 넘을 수 있는 고개가 아니죠?
 
苦待苦待多情任(고대고대다정임)
즉 고대하고 고대하던 다정한 님에게 가기 위해서는
極難極難去難嶺(극난극난거난령)
, 매우 고되고 고된 고개, 넘기 어려운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궁을촌에 가기 위해서는 그만한 자격을 얻어야겠죠? 적어도 성인의 경지에는 이르러야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인의 경지, 즉 쌍을(乙乙)의 도에 도달하여 을을이 합쳐진 전()의 도를 얻어야 하니 고되고 고될 수밖에요.
의 도는 어떻게 터득할 수 있을까요?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다다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착하게 살아야 하니까요. 나쁜 놈들을 아리(亞裡), 즉 궁을촌에 들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나쁜 놈들까지 받아들인다면 그곳도 이 세상과 다를 바 없겠지요. 그래서 하늘이 인정해줄 만큼 착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죠.
나는 착하게 살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이 나를 착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니까요. 착하면 괜히 괴롭히고, 이용해먹으려 들고, 사기 치고, 멸시하고…….
그렇더라도 그것을 견뎌 내야만 아리로 들어가는 아리령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일단 아리령까지 가는 것이 중요한데요, 을을이 합쳐진 전의 도를 닦아야만 아리령까지 갈 수 있습니다. 아리령에 가면 아리로 데려다줄 마차가 기다리는 모양입니다.
 
亞裡嶺閣停車場(아리령각정거장)
이 바로 그 마차가 서는 곳이겠지요.
 
 
 
이상 󰡔격암유록󰡕 갑을가일부를 풀이해보았습니다.
제가 굳이 갑을가를 풀이한 것은 사이비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리령이 절망의 세계에서 희망의 세계로 넘어가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었는데요,
 
우리가 익히 아는 아리랑은 어떤가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모두 아리랑고개를 넘고 싶다는 마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리랑 고개 너머에 이상향의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의 뜻이 담겼다면,
위의 갑을가<아리령>과 다를 바 없겠죠?
 
그렇다면 혹
 
<아리령 아리령 아아리(亞亞裡), 아리령고개로 넘어간다>
가 후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로 변했던 것은 아닐까요?
 
아리령은 <아리고개>라는 뜻으로, 아리령에 이미 고개라는 말이 들어 있음에도 다시 고개를 덧붙인 것은 전혀 이상할 것 없습니다. 우리는 <대관령><대관령고개>라고 흔히 부르고 있으니까요.
 
<몹시 고대하던 다정한 님>
아리랑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과 일맥상통합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나를 버리기 전에는
<몹시 고대하던 다정한 님>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분이 구원의 손길을 뻗지 않자 이제 실망해서 원망으로 변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